2024. 10. 20. 22:14ㆍ주간 [영상]
강감찬, "고려시대 전쟁 영웅"(서울1TV)
살아서는 명재상이며 장군이었고, 죽어서는 설화가 되었다.
강감찬, 장군은 몽골 침략에 맞서 싸운 전쟁 영웅으로 잘 알려져 있다. |
강감찬, (진주 강씨 중 인헌공파) 고려의 문관이자 장군. 948년 출생1031년 사망했다
강감찬은 현종을 보좌하였으며 제3차 여요전쟁에서는 상원수로 고려군을 총지휘하여 귀주대첩에서 거란군을 전멸시켰다.
젊은 시절의 이름은 강은천(姜殷川)이었다. 강감찬은 과거 급제 이후에 개명한 이름이다.
그의 선조는 고구려 말기의 장군 강이식으로 진주 강씨이다.
강감찬의 5대조인 강여청(姜餘淸)이 신라에서 시흥군(始興郡)으로 이주하였다. 아버지는 태조 왕건을 도와 고려의 후삼국 통일에 일조한 삼한벽상공신[13] 강궁진(姜弓珍)이었다.
강감찬 열전에 따르면, 강궁진의 고조부 강여청이 신라 말 시흥군(始興郡)으로 이주했고, 강여청의 자손들은 금주(衿州)에 자리잡은 걸로 보인다.
강감찬의 어머니가 여우라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강감찬의 아버지 강궁진이 태몽을 꾸고, 훌륭한 아들을 낳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을 때, 귀가 중 여인으로 둔갑한 여우를 만나 관계를 맺어 강감찬을 낳았다고 한다.
태어날 때 문곡성(文曲星)이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설화가 있는 걸로 유명하다 문곡성은 북두칠성의 4번째 별로 문(文)과 재물을 관장하는 별이다. 강감찬이 태어난 생가의 이름이 낙성대이다.
고려사<열전>에 의하면 강감찬이 젊은 시절부터 학문을 좋아하고 기발한 지략이 많았다고 하며, 983년(성종 2년)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했다. 이 때 나이가 36세로 제법 늦게 관직 생활을 시작한 편이었다. 983년 이후 1009년(목종 말년)에 예부시랑이 될 때까지 《고려사》에 등장하지 않는다.
강감찬이 1010년(현종 1년) 요나라의 성종이 40만 대군으로 침공하는 제2차 여요전쟁이 발발하자 대세 의견인 항복을 반대하고, 홀로 몽진을 주장해 이를 관철시켰다.
책임총괄 프로듀서; 김성남
방송: 서울1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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