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가 훼손해 100년 만에 다시 걷는 역사의 길…광화문 월대·현판 오늘 공개

2023. 10. 15. 22:29교육 [문화 역사]

일제가 훼손해 100년 만에 다시 걷는 역사의 길광화문 월대·현판 오늘 공개

 

100년 만에 옛 모습 찾은 광화문 새 현판과 함께 오늘 공개 / 일제가 훼손한 '임금의 길' 복원 마무리 / 경복궁의 새 상징 "이전 광화문과 다를 것" / 검정 바탕-금빛 글자 현판도 공개 / 월대는 궁궐, 종묘 등 중요한 건물에 설치한 특별한 공간

 

월대는 궁궐, 종묘 등 중요한 건물에 설치한 특별한 공간으로 서울을 대표하는 상징적인 장소이자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 앞이 새로운 모습으로 넓은 단이나 계단을 활용해 건물의 위엄을 한층 높이는 역할을 했으며, 왕실의 주요 의례나 만남 등 각종 행사가 펼쳐지는 무대 기능을 하기도 했다.

 

길고 넓은 대 양쪽에 난간석(건축물을 울타리처럼 두르고 있는 석조물)을 둔 광화문 월대는 중요한 행사가 있을 때 임금과 백성이 만나 소통하는 장소였으나,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사라진 것으로 전한다.

 

문화재청은 2006년부터 광화문을 복원·정비하는 사업을 꾸준히 추진해왔다.

 

과거 중요한 행사가 있을 때 임금이 백성과 만나던 '역사의 길'이 열리고, 광화문을 나타내는 현판도 검정 바탕에 금빛 글자로 다시 태어났다.

 

문화재청은 15일 오후 서울 광화문 앞 광장에서 월대(越臺, 月臺·건물 앞에 넓게 설치한 대)와 현판 복원을 기념하기 위한 행사를 열었다.

 

문화재청은 "오랜 기간 경복궁의 본모습을 찾아가는 복원을 진행해왔고, 이제 제 모습을 찾은 광화문 월대와 현판을 국민에게 선보였다고" 설명했다.

 

서울을 대표하는 상징적인 장소이자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 앞이 새 단장을 마치고 오늘(15) 시민에 공개됐다.

 

문화재청은 '광화문 월대 및 현판 복원'을 기리기 위한 기념행사를 이날 오후 5시부터 경복궁 광화문 앞 광장에서 개최됐다.

 

오늘 공개된는 광화문 앞 월대는 궁궐을 나선 임금이 백성과 가장 먼저 만났던 소통의 장소였지만 일제 강점기, 광화문 앞에 전차 선로가 깔리면서 크게 훼손됐고, 1960년대에는 도로 아래로 아예 자취를 감췄다.

 

문화재청은 지난해 9월부터 본격적인 월대 발굴 작업을 시작해 남북길이 48.7미터, 동서너미 29.7미터의 이 월대를 1890년대 이전의 모습으로 복원해 공개했다.

 

오늘 행사에서는 여러해 동안의 논의 끝에 검은색 바탕에 금빛 글씨로 바뀐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光化門) 현판도 공개됐다.

흰색 바탕의 기존 현판은 2010년 광화문 복원에 맞춰 내걸었으나 몇 개월 만에 균열이 발생해 논란이 일었고, 문화재청은 그해 연말 전격적으로 교체를 결정했다.우리나라 문화유산이자 많은 관람객이 찾는 경복궁의 정문이라는 상징성 때문에 한글과 한자 중 무엇으로 할지, 어떤 글씨를 새길지 그동안 의견이 분분했다. 조사 결과 광화문 월대는 길이 48.7, 29.7규모로 육조 거리를 향해 뻗어 있었으며 중앙 부분에는 너비 약 7의 어도(御道·임금이 지나도록 만든 길)가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고종(재위 18631907) 때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남긴 기록인 '영건일기'(營建日記)와 각종 사진 자료를 토대로 보면 광화문 월대는 여러 차례 변화 과정을 겪었다. 특히 조선총독부가 1910년대에 식민 통치의 정당성을 알리는 조선물산공진회 행사를 추진하고 1923년 이후 전차 선로까지 놓으면서 월대는 제 모습을 잃은 것으로 추정된다.

 

문화재청은 돌아온 월대가 광화문 복원 사업을 마무리하는 '완성'이라고 보고 있다.

 

최응천 문화재청장은 지난 12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의 국정감사에서 "경복궁의 역사성을 온전히 회복하고 궁궐의 가치와 품격을 높이기 위해 월대 복원을 추진해왔다"고 밝혔다.

 

문화재청은 광화문 월대를 복원·정비하기 위해 지난해 9월부터 국립서울문화재연구소가 조사한 발굴 성과와 향후 복원 계획을 이날 공개했다.

 

월대는 궁궐의 중심 건물인 정전(正殿) 등 주요 건물에 설치한 넓은 대()를 뜻한다. 경복궁 근정전, 창덕궁 돈화문 등에 있었는데 궁궐 정문에 난간석을 두르고 기단(基壇·건축물 터를 반듯하게 다듬은 뒤 터보다 한층 높게 쌓은 단)을 쌓은 건 광화문 월대가 유일하다.

 

월대를 복원하면서 원형 부재를 다시 사용하는 등 과거 흔적을 되살린 점은 주목할 만하다.

 

문화재청은 광화문 월대의 난간석 일부로 추정되는 석재들이 조선왕릉인 경기 구리 동구릉에 남아 있다는 연구 결과를 토대로 부재 40여 점을 활용할 수 있었다.

 

난간 양쪽을 장식하던 각 석조물이 제자리를 찾은 것도 의미 있는 성과다.

 

당초 문화재청은 동구릉에서 찾은 원형 부재를 난간 앞쪽에 모아서 배열하려 했으나, 19점의 난간석이 미세하게 다른 점을 확인해 각각의 위치도 특정할 수 있었다.

 

최근 고() 이건희 삼성그룹 선대 회장 유족 측이 기증한 동물 조각상도 복원에 큰 힘이 됐다.

 

 

월대가 복원되면서 광화문 앞에 있었던 해태(해치)상도 위치를 옮겨 시민들과 만난다.

 

문화재청은 해태상을 어디에 둘지를 놓고 논의를 이어왔으나 광화문 앞 차로, 해태상의 의미 등을 고려해 최종적으로 월대 전면부 즉, 앞부분에 두기로 했다.

 

문화재청은 이날 월대와 함께 광화문의 새로운 '이름표'도 공개했다.

 

이후 문화재청은 1893년 찍은 것으로 추정되는 미국 스미스소니언 소장 사진 자료와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남긴 기록인 '영건일기'(營建日記) 등을 토대로 현판을 제작했다.

 

문화재청은 "경복궁을 바라보며 진입할 수 있는 '새로운 길'을 볼 수 있을 것"이라며 "'빛으로 퍼져나간다'는 광화문의 의미를 함께 느낄 수 있는 행사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문화재청은 새 현판에 대해 "경복궁 중건 당시 사료와 고증 사진 등을 근거로 복원을 진행하면서 경복궁 전체 복원과 맥락을 같이 한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2010년 제작된 기존 현판이 흰색 바탕에 검은색 글자였다면, 새 현판은 검정 바탕에 동판을 도금한 금빛 글자로 한자 '光化門'(광화문)을 나타냈다.

 

글자는 경복궁 중건 당시 훈련대장이자 영건도감 제조(營建都監 提調·조선시대 궁 등의 건축 공사를 관장하던 임시 관서의 직책)를 겸한 임태영이 한자로 쓴 것을 그대로 따랐다.

 

학계 안팎에서는 10년 넘게 여러 차례 연구와 고증, 전문가 논의를 거쳐 만든 새 현판이 그간 현판 복원을 둘러싸고 이어온 논쟁의 마침표를 찍을지 주목하고 있다.

 

문화재청은 약 100년 만에 모습을 되찾는 월대가 광화문의 새로운 상징이 될 수 있으리라 보고 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50길이의 월대가 놓인 광화문은 이전까지의 광화문과 확연히 다를 것"이라며 "경복궁에서 열리는 수문장 교대 의식도 달라진 모습으로 관람객을 맞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화재위원회 산하 궁능문화재분과 위원장인 홍승재 원광대 명예교수는 월대 복원에 대해 "그동안 단절됐던 광화문과 육조 거리를 연결함으로써 한양 도성의 중심축을 회복하고 각 유적을 잇는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